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써보자 (FDD-USB 변환 기판)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는 이젠 중학교 정보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시대에 도태된 물건이다. 1.44MB라는 용량은 이젠 사진 한 장 저장하기에도 벅차다. 나도 플로피 디스크를 쓰던 세대는 아니라 플로피 디스크가 현역으로 작동하던 모습은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워낙에 광범위하게 오래 사용되었던 물건인 터라, 아직도 멀쩡히 작동하는 중고 드라이브를 아주 쉽고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 오히려 공 디스크 자체를 구하기가 힘들다고 해야겠다.
옛날에 집 정리를 하면서 아버지께서 안 쓰는 구닥다리들을 버리시는데, 그 중에 이메이션 플로피 디스크가 눈에 띄어 따로 챙겨두었다. 버리기는 아까운데 또 그렇다고 구동시켜 보자니 드라이브 등 환경을 마련하기가 귀찮아서 디스크는 그냥 방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와 아두이노를 이용해서 MIDI 파일을 연주하는 프로젝트를 따라해보고 싶어서 드라이브를 몇 개 샀다.
아무튼 그래서, 어쩌다보니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도 생겼다. 윈도우 파일시스템의 드라이브 레터 할당이 C 부터 시작하는 이유가 A, B는 플로피 디스크를 위해 예약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실제로 A가 할당되는걸 보면 또 신기할 것 같아서 컴퓨터에 연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봤다.
원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컴퓨터에 사용하기 위해선 메인보드와 플로피 디스크를 FDD 전용 데이터 케이블로 연결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 메인보드엔 그런 건 없다. 창고에 보관중이던 AMD 페넘-X3 구형 시스템 보드에 FDD 포트가 있긴 했는데, 정작 케이블도 없고 이 USB 부팅도 안 되는 구형 보드셋을 부팅시키는 것도 귀찮은 일이라 일단 보류했다.
그런데 알리익스프레스에 마침 딱 좋은 물건을 팔고 있었다.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USB로 에뮬레이션 해주는 기판이다. 하긴 USB 2.0이 480Mbps인데 플로피 디스크 따윈 에뮬레이션이 쉬울 터이다. 거기다가 전원도 12V로 승압해서 한번에 공급해주는, USB 단일 포트로 드라이브 사용이 가능하게 해주는 아주 간편한 장치다. 바로 구매했다.
실물. 정말 허접하게 생겼지만 제 기능만 잘 해주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기판을 드라이브에 장착하고 전원 케이블도 연결한다. 그리고 USB 케이블을 컴퓨터에 연결했다.
컴퓨터에 케이블을 연결하자 정말 파일 탐색기에 (A:)로 할당된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나타났다.
클릭하자 디스크를 삽입하라는 안내가 나온다.
디스크는 그냥 슬롯에 끝까지 밀어 넣으면 된다. 디스크가 완전히 삽입되면 하단의 꺼내기 버튼이 튀어나온다. 디지털 버튼이 아니라 꾹 누르면 물리적으로 빼내는 방식이다. 쓰기 중에 누르면 데이터가 손상되기 딱 좋아 보인다.
파일 시스템은 FAT이다. 용량이 너무 작아서 FAT12로도 충분한 것.
시험삼아 파일들을 몇 가지 올려보니 드라이브가 드르륵 소리를 내면서 회전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점은 마치 CD같이 기록하거나 읽을 때만 움직이고 평소에는 전혀 움직임이 없다 보니 무소음 상태를 유지한다.
1.44MB 안에 넣어볼 만한 파일이 마땅치 않아서.. 아두이노 코드들을 올려왔는데, 자잘한 파일이 많다 보니 속도가 처참하다.
다음으로는 1.27MB 크기의 이미지를 올려 봤는데, 88KB/s의 속도를 꾸준하게 유지했다. 대부분의 용량을 써 버렸다.
디스크를 제거 후 다시 삽입해 이미지를 여는 데 53초의 시간이 걸렸다.
윈도우의 감동적인 레거시 지원은 포맷 옵션마저 지원해서 [3.5", 1.44MB, 512바이트/섹터] 라는 처음 보는 옵션을 보여준다. 우리가 보통 3.5인치 하드 디스크라고 부르는 것이 사실은 3.5인치 직경 자기판이 들어간 플로피 디스크의 드라이브의 크기와 같다는 데서 따온 것이라는 점을 떠올리게 한다.
2023년의 최신 OS에서 1980년대의 산물인 플로피 디스크가 꽂자마자 인식되고, 파일을 마음대로 읽고 쓸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하다. 그만큼 오래 사용되어 왔다는 뜻이겠지. 다시는 구동시킬 일이 없을 것 같지만, 재미있는 시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