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비휘발성 데이터 저장 장치 하면 SSD, HDD를 떠올릴 것이다. 좀 더 생각해보라 하면 CD, 플로피 디스크도 나올 것이고. 그런데 거기서 더 옛날로 돌아가면 자기 테이프라는 물건이 있다.
위에 나열한 순서는 대충 사용된 시기의 역순이라고 봐도 무방하지만, CD와 플로피 디스크가 도태되어 가는 것과는 다르게 자기 테이프는 개인용으로는 자취를 감췄지만 그 명목을 어딘가에서 끈질기게 이어 오고 있었다. 바로 기업체에서의 초고용량 저장 분야이다.
테이프는 선형적(1차원적) 데이터 기록 및 탐색이 이루어지는 특성상 데이터 임의 접근이 불가능하고 자료 탐색이 미친듯이 느리지만 저장 밀도 자체는 각 시대에 항상 압도적이였다.
이는 지금도 유효한 것으로, 두께가 5~10 마이크로미터 남짓한 필름을 돌돌 말아두어 손바닥만 한 크기에 1km가 넘는 트랙이 들어갈 수 있다. 이 손바닥만한 최신 규격 LTO-9 테이프 한 개에는 무려 원본 18TB / 압축 45TB의 용량이 저장 가능하다.
자기 테이프의 또 다른 장점은 바로 가격이다. 각각의 하드 디스크는 데이터가 저장되는 플래터 외에도 이를 읽고 쓰기 위한 액추에이터와 헤드, 컨트롤러/인터페이스 기판이 전부 달려있어야 하므로 용량 대비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다. 반면 자기 테이프는 테이프 뭉치, 그리고 NFC 칩 정도만이 들어있으므로 용량 대비 가격이 저렴하다. 테이브 드라이브는 매우 가격이 비싸지만, 초고용량을 다루는 업계에서는 드라이브 1개당 담당하는 테이프 수는 엄청나게 많으므로 가격 차이는 더욱 벌어진다.
LTO(Linear Tape Open) 테이프는 IBM, Quantum, HPE 의 핵심기업과 다른 협력업체들이 컨소시움을 만들어 구축한 표준 테이프 규격이다. 테이프는 PC 발명 이후 거의 모든 순간 사용되어 왔지만 LTO가 나오기 전에는 각 제조사가 저마다의 독자적인 규격을 만들어서 사용했다. 그 중에는 자동차 바퀴만한 물건도 있고, LTO같이 손바닥만한 물건도 있지만 결국 서로 호환은 하나도 되지 않았기에 LTO의 등장은 현대의 데이터 관리의 표준화에 크게 기여했다.
LTO 규격은 세대가 거듭할 수록 용량이 2배(또는 1.5배)씩 증가해 왔으며, 2023년 기준 최신은 9세대이다. 하지만 테이프 백업 시스템이 워낙 값비싼 장비이고 쉽게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 업계에서 반영되기 까지는 두 세대 정도가 소요된다. 따라서 업계에서 퇴역한 제품들이 중고로 시중에 풀리는데, 현재 LTO-7부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신품은 최소 5백만원 이상을 호가하므로 논외.
LTO 드라이브를 한번 사용해 보고 싶어서 매물을 열심히 찾아보았으나 이러한 이유로 사실상 구할 수 있는 최대가 6세대 제품이였으며 그나마도 개당 40~50만원을 호가했기에 LTFS를 처음으로 지원하는 5세대 LTO-5 드라이브를 구해 보았다.
LTO 드라이브는 일본옥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이베이 등지에서도 구할 수는 있으나 가격이 문제가 많다.
연결 규격으로는 SAS 또는 FC를 사용하는데, SAS HBA를 가지고 있으므로 SAS 모델을 구하기로 했으며, 크기에 따라 HH (Half Height, 5.25" 1슬롯)과 FH (Full Height, 5.25" 2슬롯)으로 구분되는데 FH 모델은 구하기 더 힘들고 수명 이외엔 차이가 없으므로 HH 모델을 구하기로 했다. 제조사에 따라 HPE, IBM, Quantum의 세 가지로 구분되는데 디자인만 보고 HPE로 골랐다.
주의해야 될 점은, 시중에 풀린 중고 테이프 드라이브는 다수가 위 사진과 같이 도어가 없다. 이는 PTL (Physical Tape Library)에서 적출된 물건으로, 사람이 아닌 기계가 테이프를 자동으로 교체하는 장치에서 사용되다 보니 도어가 제거된 상태인 것이다. 이런 물건은 테이프를 읽고 쓰는 자체는 문제가 없으나 먼지 유입과 미관상 문제 등이 있으므로 개인 사용 목적에서는 피하는 것이 좋다.
일본옥션 구매대행을 통해 LTO-5 드라이브가 탑재된 1U 로더를 저렴하게 낙찰받았다. 초기가 그대로 낙찰이라 약 7만원에 구매한 셈.
하지만 실수였던 것이.. 일본 내 배송비와 국제배송비를 합치니 13만원이 나와 총 구매비용은 20만원이 되었다. 로더는 20kg에 육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베이에서 구매하는 비용보다는 한참 저렴해서 다행이다.
경동택배를 통해 도착한 거대한 테이프 로더.
상판을 열어주니 테이프 드라이브와 SAS 연결 기판이 보인다.
LTO 드라이브를 로더에서 분리했다. 2016년 생산분으로, 녹 하나 없이 상태가 매우 좋다. 5.25" 규격이며 다만 길이가 CD롬보다 훨씬 길다.
LTO 테이프는 테스트를 위해 타오바오에서 중고품으로 구입했다. 1.5TB를 저장할 수 있는 LTO-5 테이프 기준 장당 50위안으로 대충 장당 만원 꼴이다. 초록색은 LTO-4 테이프로, LTO는 1세대 하위호환을 지원하므로 LTO-5 드라이브에서 읽고 쓸 수 있다. 용량은 800GB이고 장당 3천원이다.
작동 테스트를 위해 본체에 연결한 상태. 후지쯔 D2607 레이드 카드에 연결했다. SAS2008 기반에 IT-Mode를 적용하여 LSI9211-8i HBA에 호환되는 상태로 구성했다.
LTO 드라이브를 사용하려면 제조사에서 드라이버와 LTFS 구성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 받아 설치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HPE에서는 회원가입만 하면 관련 툴을 무료로 제공해서 설치할 수 있었다.
드라이버를 설치하면 장치 관리자에서 '테이프 드라이브' 라는 항목과 처음 보는 아이콘을 발견할 수 있다. LTFS는 LTO-5부터 지원하는 테이프 전용 파일 시스템으로 일반 파일 시스템처럼 테이프를 마운트하여 파일 입출력을 할 수 있게 해주는데, 명령어나 전용 소프트웨어가 아닌 일반 파일 탐색기로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매우 편리하다. 테이프를 LTFS용으로 포맷하고 마운트 하면 파일 관리자에서 드라이브 레터가 할당된 테이프 드라이브를 볼 수 있다.
테이프를 삽입하자 테이프 감는 소음과 함께 용량이 인식 된 모습이다.
테스트로 파일을 기록해 보았는데, 대형 파일의 경우 약 80MB/s 정도의 속도로 기록이 되었다. LTO-5의 최대 스펙에 많이 못 미치는 속도인데, 파일 자체의 특성이나 LTFS의 사용으로 인한 오버헤드 감소분이라고 생각이 된다.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테이프 드라이브를 2U 랙마운트 케이스인 아마퀘스트 K238F에 장착했다. 드라이브 자체는 5.25" 베이용이지만 길이가 너무 길어서 파워와 충돌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SFX사이즈 파워를 장착해 공간을 만들었다.
LTO 드라이브는 열이 많이 발생하는 장비이므로 쿨링팬이 필수적이다. 케이스 공간이 여의치 않았으나 억지로 하나 끼워넣었는데, 효과가 있어서 그대로 고정시켰다.
완성된 형태.
원격으로 접근하여 NAS에서 필요한 정보를 그때그때 테이프에 보관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사용 소감으로는 탐색 속도가 느리다 말만 들었지 정말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리고 답답하다. 모든 탐색이 지점과 지점 사이의 모든 트랙을 거쳐서 왔다갔다 하다 보니 파일 하나 하나에 접근하는 모든 탐색이 O(n)이다. 또한 소음도 아주 심해서 백업을 걸어두면 몇 시간 내내 애애앵 하는 높은 음이 귀를 찌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재미있는 물건임에는 틀림없다. 솔직히 효율성만 따지면 하드디스크를 더 사 모았을 텐데 굳이 이런걸 산 이유는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였기도 하고, 또 굳이 장점을 고르자면 테이프의 보존 수명이 (조건이 맞으면) 약 30년 정도로 매우 길다는 점도 있다. 어찌 되었든 계속 가지고는 있을 것 같다.
System Check :
CPU : Intel Pentium G4560 Kaby Lake
M/B : Asrock H110M-iTX/AC
CS : Arctic Alpine 12
RAM : Samsung DDR4-2666 8GB X 2 (16GB)
SSD : WD Blue 3D SATA 250GB
HBA : Fujitsu D2607 (IT-Mode)
TAPE : HPE StoreEver LTO-5 Ultrium 3000 SAS (Fujitsu OEM SE0X9LT2)
ODD : LG Blu-Ray SATA X12 BH12LS38
PSU : Metalfish SFX-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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