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는 시끄러운 물건이다.
하드 디스크 회전음, 쿨링 팬 바람소리, 수냉 펌프 작동음 등등 모터가 못해도 네다섯개는 들어가니 당연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딱히 부하가 크지 않은 작업을 할 때에도 배경에 낮게 깔리는 진동음은 상당히 불쾌하다. 그래서 문득 조립식 PC에서 완전 무소음을 구현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하드 디스크는 SSD로 대체할 수 있으니 제외하고, 수냉 펌프 소음도 수냉 쿨러를 안 쓰면 해당사항이 없으니 결국 남는 과제는 쿨링팬이다.
그런데 쿨링팬은 파워서플라이에도 들어가고, 케이스에도 들어가고, 그래픽 카드에도 들어가고, 가장 중요한 CPU 쿨러에도 들어간다. 그래픽카드를 따로 안 쓰고 CPU 내장 그래픽으로 사용하고, 케이스 팬은 아예 안 쓴다고 쳐도 두개가 남는데 둘 다 너무나 필수적인 것들이다. 파워서플라이와 CPU 모두 열이 많이 발생하고 적절히 식혀주지 않으면 성능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 가지 해결책이 존재한다.
1. 소비전력(또는 출력)이 낮은 제품을 사용하여 발열량 자체를 낮춘다.
2. 방열판을 왕창 키워서 팬 없이도 자연대류로 발열제어를 가능하게 한다.
찾아보니 2번에 해당하는 CPU 쿨링 팬이 몇 가지 있었다.
아이디어는 비슷하다. CPU와 맞닿는 베이스에서 히트파이프를 통해 이동한 열을 겹겹히 포개진 방열판과 방열핀을 통해 발산하는 구조다. 심지어 왼쪽 제품은 한국 회사 작품이다. 오른쪽은 녹투아에서 비교적 최근에 공개한 쿨러로 TDP 105W까지의 발열을 제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는 케이스 자체를 방열판으로 사용하는 케이스 겸 쿨러도 존재한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 방열판의 크기가 너무 거대해서 본체 전체의 부피가 너무 커지고, 후자의 경우는 가뜩이나 비싼 데다 해외에서 들여와야 하기 때문에 가격이 큰 문제가 된다. 주력 본체가 아닌만큼 작은 부피로 만드는 것도 굉장히 중요했다.
그렇게 고민하던 와중 상대적으로 옹졸한(?) 팬리스 방열판을 찾게 되었다.
아틱 사에서 상대적으로 작으면서도 심플하고 무식하게 생긴 패시브 방열판이 있었다. 크기가 작은 만큼 표기상 TDP는 65W, 사실상 최대치는 45W였지만 TDP가 35W인 라이젠 3200GE를 사용할 예정이라 괜찮을 것이라 생각이 됐다.
문제는 한국 정발은 한 적이 없고 단종된 지 오래된 물건이라 전세계 어느 사이트를 뒤져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커뮤니티에서 도움을 요청했더니 어느 한 분께서 사용해보고 안 써서 보관 중이시던 물건을 무려 무료로 보내 주셔서 가까스로 구하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천운이다.
CPU 방열판을 구했으니 다음은 파워인데, 본체 총 전력 소모가 100W를 넘지 않으니 DC-ATX 변환기판과 DC어댑터를 사용하기로 했다. 보통 노트북 충전할때 쓰는 벽돌 어댑터는 PC에 들어가는 파워서플라이와 구조적으로 동일한데, 단지 출력이 낮아 팬 없이도 발열제어가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반대로 벽돌 어댑터를 PC에 사용해도 된다. DC-ATX 변환기판은 단일 전압 DC 전원을 받아 PC에서 사용하는 각 전압으로 변환 및 분배하는 역할을 한다. 즉 파워서플라이를 두 개로 쪼개면 DC어댑터와 DC-ATX기판이라 할 수 있겠다.
DC-ATX 변환기판은 타오바오에서 판매하는 picobox Z2-ATX-200 제품을 이용했다. 가격은 한화 약 3만원. MLCC로 인해 발생하는 코일 와이닝으로 인한 소음이 상대적으로 없다고 하여 구매했다. 12VDC를 필요로 한다.
케이스는 SKTC A09로 골랐다. FLEX-ATX 파워를 사용하는데, DC 전원 어댑터가 FLEX-ATX 자리에 보통 잘 맞아서 대충 끼워넣으려고 계획을 세웠다.
아틱 Alpine Passive가 패시브 쿨러 중 작은 편이라고는 해도 여전히 상당히 육중하다.
테스트를 위해 사용했던 A320M에서 CPU를 빼내고 이번 빌드에 사용할 iTX 메인보드인 ASUS A320i-K에 3200GE를 장착했다.
메인보드에 쿨러와 DC-ATX 기판을 장착한 모습과 SKTC A09 케이스.
하단이 FLEX-ATX 파워용 자리인데, 중국산 12V15A DC전원어댑터가 들어맞는다.
다음은 메인보드를 통째로 넣어주면 사실상 조립 끝이다.
케이스가 좁아터진 탓에 좀체 제대로 들어가질 않지만 억지로 돌려끼워가며 조절하다 보면 제자리에 안착하게 된다.
메인보드 백플레이트(io실드)는 중고로 구하다보니 없어서 일단은 없이 조립했다.
그런데.. 실측보다 방열판의 높이가 조금 더 높아서 옆판이 잘 닫히지 않는 현상이 생겨버렸다.
억지로 닫을 수는 있지만 옆판이 볼록하게 튀어나오고 메인보드가 눌려서 휘는 사태가 생겨서 해결책을 강구하다가 메인보드 스탠드오프를 낮춰서 메인보드 자체의 높이를 낮추기로 했다.
그리하여 스탠드오프 4곳을 대충 자를 만큼 표시하고 그라인더를 이용해 윗머리를 갈아버렸다.
그러자 메인보드가 휘지 않고 정상적으로 닫힌다.
그리고 백플레이트 자리가 휑해서 대충 설계하고 3D 프린터로 인쇄해서 막아주었다.
3.7L 부피의 완전 무소음 PC의 완성이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니 중국산 어댑터는 조금 불안해서 국산 12V 10A 어댑터로 교체를 해주었다. 3200GE 단일 세팅에 120W면 넉넉하다 못해 넘친다.
솔직히 이게 될까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빌드였고 내가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로 클리어런스가 빡빡하지만 결코 충돌 없이 완전하게 완성되었다. 스탠드오프를 깎아내리는 고통이 있긴 했으나 결과만 만족스러우면 뭐.
전원을 올리니 전원등은 들어오지만 정말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 모터가 일절 없으니 팬 소음은 당연히 없고, 고주파나 코일떨림음도 선별을 잘 한 탓에 귀를 들이대고 매우 집중하지 않는 한 전혀 들리지 않는다.
윈도우 10을 설치하고 각종 부하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CPU 체급이 워낙에 낮고 소비전력도 낮은 저전력 모델이다 보니 약 30분을 스트레스 테스트를 하며 갈궈도 온도가 75도를 넘어가지 않았다. 방열판만 가지고 이정도 발열제어가 가능하다니 신기하다. 이정도면 문서작업이나 유튜브 시청 등 일상작업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무소음 PC는 KVM 스위치에 연결하여 소음 없이 작업을 하고 싶을 때마다 메인 본체를 끄고 대신 켜서 잘 사용하는 중이다. 음악 감상용으로도 좋다. 컴퓨터를 사용한 녹음을 할 일이 있을 시에도 잡스러운 컴퓨터 소음이 일절 없으니 유용할 것 같다.
System Check :
CPU : AMD RYZEN 3200GE
M/B : ASUS A320I-K
RAM : SAMSUNG DDR4-2666v 8GB × 2 (16GB)
GPU : AMD Radeon Vega 8 Graphics (Integrated)
SSD : SK Hynix BC711 256GB
DC-ATX : PICO-BOX Z2-ATX-200
AC-DC : LOADUS 12V10A 120W
CS : ARCTIC Alpine AM4 Passive
CHA : SKTC A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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